Life/Paris

Musée de l'Orangerie

Merci-16 2018. 2. 19. 07:58

이제 봄이 서서히 오나보다. 화창한 날씨에 눈은 밖을 향해 있지만 제출해야 할 grading과 지원서들이 머리 속을 멤돈다. 일요일이지만 학생들 숙제를 읽고 있자니 갑갑하다. 봄방학을 맞아 Strasbourg에 다녀와야 겠다 싶었다가, 하루가 날아가니 베르사유에 다녀와야겠다 싶었다가, 그마저도 몸과 마음이 편치 못해 가까운 미술관에라도 다녀오자 싶었다. 어떤 기대 없이 말이다.


Orsay에 다녀오려고 했으나, 시간이 이미 늦어 그 역시 줄을 서야 하는 관계로 오랑주리 미술관에 다녀왔다. 집 밖을 나가지 않으면 버틸수가 없겠다 싶어 별 기대 없이 그냥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가서 내가 좋아하는 인상주의 쪽 그림을 보고 와서 위안을 받았던 하루다. 그리고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만사 제쳐두고 그림 이야기를 적게 되었다. 아니면 또 까먹고 생각만 하고 만다. 


루부르 - 뛰를리 정원 - 콩코드 광장으로 이어지는 공원을 따라 걷다보니 사람들이 다들 나와서 오랜만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그렇다. 빠리의 겨울이 길었다. 나만 봄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용감하게 추운 날씨와 빗속을 밤낮으로 달리던 파리 시민들도 마음 속으로는 갑갑해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루브르나 오르세처럼 크지는 않으나, 인상주의 - 야수파 - 입체파 - 신인상주의를 잇는 시대의 대표작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그 중 오늘 내가 본 작품 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루느와르(Auguste Renoir)에 대해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0층에는 Claude monet의 수련들이 전시가 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지베르니를 다녀와서 따로 적도록 하고, -2 층에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가게 되면 르누아르의 그림이 우리를 맞이하게 되는데, 만나게 되는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이것이다.


Jeunes filles au piano


* 본 내용은 오디오 가이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석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르누아르는 미술관장인 앙리 주종(?)의 부탁을 받아 1891년 룩셈부르그 미술관에 전시할 그림을 그리도록 요청을 받는다. 그 당시 룩셈부르그 미술관에는 생존하고 있는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했는데, 르누아르는 6개의 버전의 피아노 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지금 전시된 그림은 습작이고, Orsay에 완성본이 있는데 사진을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완성본에는 장식 그리고 거실속의 detail이 추가 되면서 소재의 신선함이 조금 떨어진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그림들을 그리던 시기에 르누와르는 엄청난 근심과 압박에 시달렸는데, 매번 같은 그림을 5~6번씩 그리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때의 정신적 고통은 가히 병적이었다고 알려지지만, 그림에서는 평안함과 조화가 드러남을 알 수가 있다. 이 그림에서 르누아르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소녀들이 피아노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19세기 당시 피아노는 부르주아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악기였다고 한다.


그 다음 볼 수 있는 그림은 피아노 시리즈 중 하나인


Yvonne and Christine Lerolle at the piano


Yvonne 과 Christine 은 화가이자 수집가인 Henry Lerolle (1848-1929)의 두 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배경에서 Edgar Degar의 작품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볼수가 있는데, 당시 Henry의 집이 미술가와 음악가의 만남의 장소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얼마전 파리 필 하모니를 다녀왔었는데 그때 연주곡인, Claude Debussy (1862-1918)가 이 집에서 자주 왔다고 한다. 다른 의미로 세상이 좁다. 배움 역시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르누아르는 죽을 때까지 이 그림을 간직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디오 가이드에 따르면 르누아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 어떤 것도 확신할 수가 없지.

고대작품들을 보면 얕은 수법은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 시대 화가들은 얼마나 존경할 만한 장인들인가. 모든 답은 작품 속에 있다네.

그림은 몽상이 아닌 손에서 탄생하는 것이야.

화가는 성실한 노동자가 되야해.

우리는 고대 화가들이 표현한 환상적인 질감을 찾아 헤맬 뿐이야.


참 분명하고도 겸손한 생각들이다. 클래식은 지금 까지 살아남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로 어떤 경지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재능뿐만 아니라 성실함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르누아르는 꽃을 그리길 좋아해서 부인이 꽃을 가져와서 싸구려 녹색 병에 꽂아 두면, 르누아르는 그걸 보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연작들이 오랑주리에 있다. 르누아르는 모델을 그릴 때는 긴장을 하지만, 이렇게 꽃을 그릴 때는 평안한 마음으로 과감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르누아르는 마지막 순간 병원에서도 꽃을 그렸다고 하는데, 그 순간에는 고통을 잠시 잊은 듯 보였다고 그의 아들 장 에 의해 전해진다. 그림을 그리다 붓을 다시 가져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나서 르누아르는 이제 뭔가 알 것 같은데 라고 조용히 읇조렸다고 한다.


Fleurs dans un vase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누드화인데, 르누아르는 18세기의 자연, 관능미 그리고 풍경적 누드를 계승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유심히 봐야 할 점은, 인물 그리고 풍경이 서로 다른 기법으로 그려짐을 알 수가 있다. 배경 속의 자연은 인상주의적 기법으로 강렬한 색채를 나타내고 있으나, 여성은 평온하고 부드럽게 표현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르누아르가 점차 인상주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한다. 인상주의의 끝에 다다른 르누아르는 자기가 데셍 그리고 유화를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Femme nue dans un paysage


Henri Émile-Benoit Matisse


야수파(Fauve)의 선구자이자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는 앙리 마티스의 그림을 보도록 하자. 앞선 르누아르의 스타일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수가 있다. 


마티스와 그의 조수 리디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읽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로뎅과 까미유와는 반대되는 결말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마티스는 남부 해안 도시인 니스에 정착해서 거기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마티스의 그림에는 창문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외부의 세계와 자신의 내부를 잇는 장치로 해석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남부 프랑스에서 느꼈을 마티스의 환희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현실은 이 방안 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면 조금의 열려 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화창한 햇살과 시원한 바다 바람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도록 하지 않겠는가.


Women with Sofa or The Divan


방 안의 다른 침대나 화장대들은 시선을 창문으로 모으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창을 통해 느껴지는 펑안함과 따뜻함은 1차 대전 후의 삶의 평안을 반영한 것이라 전해진다. 마티스는 음악 애호가였는데, 1914년 이후 바이올린을 하루 1시간 이상씩 연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악기가 자주 등장을 한다고 한다. 아래 그림은 니스에서 살때 르퐁세르와 영국인 거리가 보이는 니스의 구시가지의 Charles-Félix 광장의 한 아파트에서 그려졌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색채의 대비가 이뤄짐을 알 수가 있는데, 건물과 창의 분홍, 블라우스의 노랑, 그리고 창의 회색이 서로 대비를 이루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원근감을 파괴해가면서 창에 반사된 모습을 표현을 했다고 한다. 니스는 지금 카니발 기간인데, 나도 언젠가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Woman with Mandolin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일단 이정도에서 마무리를 짓도록 해야겠다. 미술에 관해 아는 것이 많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미술관에 가면 이렇게 정리를 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중요한 부분을 적어서 왔는데, 결국 이것도 나의 즐거움이 있어야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겠나 싶었다.


작품들을 감상하고 관련된 일화를 들으면서 느낀 점은 역시 거장들 답게 자기 작품에 깐깐하고 완벽하길 바랬다는 점이다. 유심히 설명을 보면 작품을 완성하는데 1~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허투루 넘기지 않고 빈틈을 메우기 위해 같은 그림을 여러번 그렸을 것이고 거기에 따른 좌절도 맛봤을 것 같다. 여지껏 만나왔던 지의 거장들, 나의 지도교수 그리고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결국 나도 그런 다듬어지기 위해 두들겨지는 단계를 거쳐야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외로이 빠리를 떠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걸었던 길을 나도 따라 걸으려고 노력하는 중 일지도 모르겠다는 위로를 해보았다.